본문 바로가기
집과 물건

죽을 때 다 싸들고 갈건가

by 천천히 스미는 2025. 2. 19.
반응형

(c) 천천히 스미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호주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내 캐리어가 비행기에 실리지 않고 누락되는 일이 있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분실 신고서를 작성하고, 망연자실한 채 빈 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짐 안에 있던 내가 아끼던 옷과 매일 쓰던 물건들이 가득했다.

손 때 묻은 익숙한 물건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허전하고 슬펐다.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렇게 며칠을 애타게 기다리다, 3일 뒤 내 캐리어가 우리 집으로 무사히 배송됐다.

너무나 반갑고 기쁠 줄 알았는데, 막상 짐을 마주하자 마음이 덤덤했다.

몇 날 며칠 그리워했던 물건들이었지만, 다시 보니 그냥 '물건'일 뿐이었다.

 

'왜 3일 동안 마음고생을 했지?'

'언제든 다시 살 수 있는 것들인데'

 

이 물건들 때문에 마음 고생한 게 아까웠다. 

인생에 있어서 채울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물건에 전전긍긍했을까.

이때를 계기로 물건을 물건일 뿐,

물건에 크게 의미를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득 죽음을 떠올렸다.

 

언젠가 삶이 끝날 때, 내가 애착을 가졌던 물건들은 결국 남겨지거나 사라질 것이다.

그때도 나는 지금처럼, 물건을 이제 쓰지 못한다고 아쉬워할까? 

 

살면서 무엇을 소유해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돌아보게 됐다.

결국 마지막 순간 남는 건 물건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흔적과 남겨진 사람들과의 기억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물건이 아니라 더 본질적인 것들을 채우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목차

1. 내가 죽은 후 내 물건은 누군가 정리할 것이다. 
2. 죽음을 준비하는 미니멀리즘
3.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삶을 정리하는 연습을 해야지

 

 

 

내가 떠난 후 남겨질 것들

내가 언젠가 삶이 끝나면 내 물건을 누군가 정리할 것이다.

가족일까? 아니면 업체일까?

 

내가 남긴 물건들은 어떤 물건들일까.

 

아끼고 아끼다 쓰지 못한 새 물건이 있을까?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있는지도 몰랐던 물건들이 가득 쌓여있을까?

입지도 않는 옷을 이렇게 이고 지고 있을까?

쓰지도 않는 펜이 100개 넘게나 쌓아둘까?

배달에 딸려온 나무젓가락을 500개 넘게 쌓아놨을까?

배달용기를 씻어 말려놨을까?

쓰지도 못한 1+1 세재가 베란다 가득가득 쌓여있을까?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외장하드가 잔뜩 쌓여있을까?

각종 편지와 메모들은 어떻게 남아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남겨진 사람이 가족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왜 이런 거를 짊어지고 사느라 사셨을까.

왜 새거 안 쓰고 아끼다 이렇게 두고 가셨을까.

입지도 않는 옷을 장롱을 가득 채우셨을까.

나무젓가락, 비닐봉지, 배달용기가 뭐라고 이걸 이렇게 귀중하게 보관해 놨을까.

10년을 더 쓸 거 같은 대용량 세재를 몇 개나 사셨을까.

외장하드는 그냥 버려야겠다.

 

가족들이 이런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 좀 끔찍했다.

이런 생각 끝에 가볍게 살다가 가볍게 가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살다 보면 가족들이 늘어나고, 아이가 생기면 물건이 늘어날 것이다.

또 아프기라도 한다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많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삶의 기본 기조를 '물건을 줄이고, 가볍게 사는 것'으로 유지한다면,

내가 죽은 후 남겨질 물건을 조금이라도 덜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내 짐을 정리해야 할 사람의 짐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을 준비하는 미니멀리즘

스웨덴에는 죽음의 청소(Döstädning)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

스웨덴에선 나이가 든 사람들이 불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정리해서 남겨진 사람들이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를 죽음의 청소라고 부른다고 한다.

꼭 노년이 아니더라도 청년부터 미리미리 습관을 들여도 좋지 않을까.

 

살면서 의미 없는 물건을 쌓아두기보다는 미리미리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물건뿐 아니라 디지털도 마찬가지다. 이메일, 회원가입한 수많은 사이트, SNS, 디지털 파일 등 정리되지 않은 다면 남겨진 가족들에게 또 다른 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삶을 정리하는 연습을 해야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삶을 끝내기 위함이 아니라 삶을 알차고 의미 있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내 삶을 가족과의 사랑으로 채우고 싶다.

이 사랑에 집중하기 위해 삶을 더 가볍고 본질적으로 만들고 싶다.

 

불필요한 물건은 줄이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도는 것.

미리 정리하는 것은 죽음을 무서워하기보다는, 더 본질적인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결국 삶의 끝에 남는 건 물건이 아니라 삶의 흔적과 기억이다.

더 덜어내고, 정리하며, 의미 있는 것들로 삶을 채우고 싶다.

 

 

 

 

 

 

 

천천히 스미는
ⓒ 정리정돈 일기. All rights reserved.

반응형
공유하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