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줄였다.
불필요한 물건은 버리고 내 시야에는 내가 필요한 것만 두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단순한 모습들이 참 마음에 든다.
꾸준히 정리정돈 책을 읽으며 나를 다잡는 데 그 과정이 참 재밌다.
그런데 어제 물건은 정리 정돈하는 데, 그래서 이젠 필요 없는 물건은 집에 들이지 않는데, 어쩐지 쓸모없는 말들을 자꾸 주워 놓는 나를 마주하게 됐다.
어릴 적 조약돌이 특이하다고 주워놓던 그런 것 같다. 엄마는 어떤 게 깃들어있을지 모르니 밖에서 함부로 물건을 주워 오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물건은 안 주워오는데 말을 자꾸 주워온다. 지나가는, 별 의미 없을 거라 추측되는 말들을 굳이 주어온다. 그리고 그 주어온 건 내 것이니 그 주어온 말을 손에 쥐며 혼자서 상처를 낸다. 어서 갖다 버리지 않고서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물건은 눈에 보이는 데,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함부로 주워오기 쉽다.
물건도 가족들이 주거나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받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마음이 무겁다.
그저 물건을 받아왔을 뿐인데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리정돈에 시간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정리하지 못한다.
어느 날은 침실, 어느 날은 옷, 어느 날은 공구, 어느 날은 베란다, 어느 날은 주방, 어느 날은 신발장, 어느 날은 잡동사니, 어느 날은 오빠 옷, 어느 날은 냉장고, 어느 날은 욕실, 어느 날은 약통, 어느 날은 하드디스크, 어느 날은 사진, 어느 날은 메일함, 어느 날은 책, 어느 날은 공중부양, 어느 날은 분리수거함…
나는 하루아침에 정리정돈을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주 동안의 시간을 들였다. 매일매일 정리정돈에 시간을 썼다.
말을 정리할 때도 물건을 정리할 때랑 비슷할 것 같다.
어느 날은 직장에서 상처가 되는 말, 어느 날은 친구한테 들었던 말, 어느 날은 직장동료한테 들었던 말, 어느 날은 가족에게 들었던 말, 어느 날은 연인에게 들었던 말, 어느 날은 나에게 내가 했던 말, 어느 날은 그저 지나가는 행인에게 들었던 말, 어느 날은…
어느 누군가 생각 없이 했던 말했던 말을 내가 주워서 나 스스로 상처를 냈다. 아프고 슬펐다. 그 말에 나를 대입하여 그 사람은 날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부정까지 하는 말을 했다는 게 마치 내가 나를 부정한 것같이 슬펐다. 그저 내가 아닌 타인의 말인데 난 그 말을 주웠다.
그리고 말을 주었다는 사실은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에게 미안하고 실망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주었는데 나한테 필요가 없으면 버린다.
버리면 된다. 나한테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싹 다 갖다 버렸듯이, 음식도 싹 다 갖다 버렸듯이, 나는 나한테 필요한 말만 남기고, 필요하지 않은 말은 버리련다. 자, 버렸다.
썩은 음식도 버린다. 곰팡이가 핀 옷도 버린다.
썩은 말도 버린다. 곰팡이가 핀 마음도 버린다.
물건처럼 말에도 미니멀리즘을 적용하겠다.
언젠가 필요할 거야, 이 말은 나한테 도움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무턱대고 모아대던 말들을 모두 100리터 쓰레기봉투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쓸데없는 말도 함부로 주워오지 않는다.
물건은 바닥에 두지 않는다.
말을 바닥에 두지 않는다.
목적에 맞는 말만 내 마음에 들인다.
침실이면 침실에 꼭 필요한 물건, 필요할 때만 조금씩 사는 음식 들, 소모품이면 내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소량의 양만 들이듯,
말도 이 말을 꼭 나한테 필요한 것인지, 어디에 둘 것인지, 자리가 있는지, 지금 당장 쓰는 말인지를 파악하여 내 마음에 들일 지 안 들일 지를 결정한다.
이 말은 나한테 필요한 말도 아니고, 그러므로 조언도 아니고,
나에게 영향을 줄 만큼 소중한 사람도 아닌 사람이 한 말이고,
이런 말이 내 마음에 둘 자리도 없거니와
지금 내가 당장 쓸 수 있는 말도 아니므로 영양가도 없다.
고로 이 주워온 말은 어떻게 한다? 버린다.
천천히 스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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